[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무학대사비 無學大師碑

경기도유형문화재 제51호




<무학대사비>는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自超(1327~1405)의 비로, 양주 회암사지 북서쪽 능선의 남쪽 끝에 세워져 있다. 무학은 그의 스승 나옹 혜근, 지공 선현과 함께 고려말 삼화상三和尙으로 불리던 고승이다. 그는 18세 때인 1344년(고려 충혜왕5) 출가하여 소지小止 선사의 제자가 되었으며, 혜명慧明 국사로부터 불법을 배웠다. 1353년(공민왕2) 원나라 연도燕都로 가서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그곳에 와있던 나옹懶翁에게 각각 깨달음을 인가받은 후, 1356년 귀국하였다. 1371년 나옹이 왕사로 책봉되어 송광사에 머물 때 전법의 상징인 의발衣鉢을 전해 받았으며, 이후 나옹과 함께 회암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회암사 중창 과정인 1373년 9월 무학은 나옹을 도와 회암사에 지공의 부도를 세우고 유골을 봉안하였다. 1376년(우왕2) 나옹이 입적하자 그는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녔으며, 이 무렵 공양왕이 왕사로 삼고자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무학대사비 후면,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무학은 1380년대부터 태조 이성계와 만남을 가져왔으며, 일설에는 그가 태조의 신왕조 건국을 예언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무학은 조선 건국 직후 왕사에 책봉되었으며, 한양으로의 국도 선정 및 궁궐의 조성 과정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1398년(태조7) 왕사의 직에서 물러난 이후 금강산 진불암에 머물다가 1405년(태종5) 봄 금장암이라는 암자에서 나이 78세, 법랍 62세로 입적하였다.


무학대사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무학의 입적入寂 이후 1407년(태종7) 부도탑(보물 제388호)을 먼저 세웠으며, 비는 1410년(태종10) 건립되었다. 비문은 무학의 제자가 올린 행장을 토대로 변계량卞季良이 지었으며, 글씨는 공부孔俯가 해서체로 썼다. 이 비는 중도에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다. 1821년(순조21) 봄 이응준李膺峻이라는 선비가 술사術士의 말을 듣고 삼화상과 연계된 석조물 5점을 파괴하는 일을 저질렀는데, 다행히 원래 비의 글씨를 모각模刻하여 1828년(순조28) 이 비를 다시 세웠다. 이 비는 방형대좌에 옥개석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식으로, 비신에 비해 받침이 크고, 지붕은 낮고 작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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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높이 370cm, 비신 240×27cm

      재질/ 석재(화강암, 대리석)

      주소/ 양주시 회암동 산8-1

      지정일/ 1974.09.26

      소유자/ 회암사

      관리자/ 회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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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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