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건륭오십구년오월삼일 군호재가문서 乾隆五十九年五月三日軍號裁可文書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50호




<건륭오십구년오월삼일 군호재가문서>는 건륭乾隆59년 5월 3일 병조兵曹에서 야간 순찰에 사용할 군호軍號를 동궁東宮 시절의 순조純祖에게 재가裁可받은 희귀한 문서이다. 건륭 59년은 정조 18년 즉 1794년이다. 당시 순조의 나이 5세였다. 군호는 병사들의 야간 순찰에 사용하기 위해 미리 약속해 두었다가 자기 편의 식별이나 비밀의 보장을 위해 쓰는 일종의 암호暗號이다. 조선시대에는 매일 신시(申時:오후3~5시)에 입직入直한 병조의 참의參議나 참지參知가 세 글자 이내의 군호를 만들어 밀봉하고 국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은 다음 병조를 거쳐 병사들이 밤에 근무하는 경수소警守所로 내려 보내 시행케 하였다. 하지만 국왕이 도성 밖으로 행차하여 부재중이면 동궁東宮에게 재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 문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작성된 것이다.



건륭오십구년오월삼일군호재가문서,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1794년(정조18) 5월 3일 병조에서 입직하던 병조참의 윤장렬尹長烈 (1765~?)이 ‘장양長養’ 두 글자를 써서 동궁에게 보고하자 동궁이 그 옆에 ‘태평太平’이란 두 글자를 쓴 후 자신의 수결手決을 하고 ‘가可’자를 써서 재가하였다. 윤장렬의 입직 사실은 해당 날짜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서도 확인된다. 문서에는 병조 관인官印이 총 7군데 날인되어 있다. 문서 하단에는 윤장렬의 손자인 진사進士 윤만선尹萬善(1791~?)이 1821년(순조21) 6월에 지은 발문跋文이 첨부되어 있다. 발문에는 윤장렬이 문서를 소장하게 된 경위와 아들인 윤치영尹致永(1764~?)이 족자로 만들어 보관해 오던 과정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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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1794년)

      규모/ 1매 / 82.2×62.4cm

      재질/ 종이

      주소/ 군포시 고산로

      지정일/ 1994.10.29

      소유자/ 윤택진

      관리자/ 윤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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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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