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용연서원 龍淵書院





<용연서원>은 1691년(숙종17)에 이사상李師相 등의 남인계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곳에서 은거하며 만년을 보낸 이덕형李德馨(1561 ~1613)과 조경趙絅(1586~166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다. 남인 집권기인 1692년(숙종18)에 ‘용연龍淵’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경기도 내 남인세력의 유력한 근거지로 향촌교화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용연서원 전경, 1990년대 ©경기도


‘용연’이라는 이름은 포천에 있는 연못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덕형이 세운 공로가 인정되어,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하였다. 이덕형의 본관은 광주,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이다. 1580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이조정랑·대사간·대제학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정주까지 왕을 호종했고, 청원사請援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파병을 성취시켰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어사 양호楊鎬를 설복해 서울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이어 명나라 제독 유정劉綎과 함께 순천에 이르러 통제사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적장 고니시(小西)의 군사를 대파하였다.


용연서원 홍살문과 외삼문,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1613년(광해군5)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삼사에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처형과 폐모론을 들고 나오자, 이항복과 함께 이를 적극 반대하다가 관직삭탈 후 용진龍津으로 물러가 국사를 걱정하다 병사하였다. 조경의 본관은 한양,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주봉柱峯이다. 1626년(인조4)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청요직을 지내고,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사간으로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어 대사간·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뒤 1650년(효종1) 청나라가 사문사査問使의 척화신에 대한 처벌 요구로 영의정 이경석李景奭과 함께 의주 백마산성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나와, 1653년(효종4) 회양부사를 지내고 포천에 은퇴하였다. 1661년(현종2) 판중추부사로 윤선도尹善道의 상소를 변호하다가 대간의 논박을 받고 파직되었고, 숙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용연서원 사당,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용연서원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경내 건물로는 사당·내삼문·강당·외삼문·홍살문 등이 있다. 본래 한국전쟁 때 사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1986년 이후 복원하였으나 동재와 서재는 복원되지 않았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각 칸에 이분합의 띠살문을 달았다. 사당 내부의 중앙에는 이덕형과 조경의 위패를, 배면벽의 협칸 양측에는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용연서원’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鄕祠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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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1691년 창건)

      규모/ 일원 / 사당 3×3칸, 강당 3×2칸

      재질/ 목재

      주소/ 포천시 신북면 신평로 72번길 1-5

      지정일/ 1976.08.27

      소유자/ 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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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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