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화화2017] 《이면 탐구자》

2017.12.15-2018.03.25 / 참여 작가 전지 작업 연구


전지를 향한 관찰자 시점

: 여성 만화가가 잊혀지는 것들에게 보내는 꼬깃꼬깃한 연서



이생강(독립기획자)



수집툰 : 굳이 수집하는 것들


스스로 ‘만화가’라고 지칭하는 것과 본인을 ‘예술가’로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표현수단으로 ‘cartoon’을 선택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업세계를 보여주기 위하여 다양한 매체를 선택할 수 있는 반면에, 만화가라고 규정했을 때는 만화의 어법으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만화의 선구자인 로돌프 퇴퍼(Rodolphe Topffer)가 초기 자신의 만화를 ‘판화로 된 문학’ 이라 칭한 것처럼 만화는 단순한 삽화적 성격만이 아니라 폐쇄된 칸, 언어의 사용, 서사구조 등 문학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가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


전지 작가는 자신을 ‘만화가’로 규정하고 활동해왔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상 드로잉을 간단한 글과 함께 업로드 하기도 하고, 자신의 자전적 내용을 엮어 만화수필집이란 장르로 출판 활동을 이어왔다. 그녀는 본인이 만화수필집이라 이름 붙였던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만화가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겪은 에피소드를 만화화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툰(web-toon)에서는 일상툰 혹은 생활툰이라는 장르가 존재할 정도의 전통적 작업방식이다. 전지 작가 또한 장르적으로는 일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상툰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는 그녀가 안양이라는 도시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집요하게 기록하는 것을 보고는 ‘수집툰’ 혹은 ‘기억툰’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고 싶어졌다.



<동네 드로잉>, <기어코 이런 주차금지> 시리즈 전시 전경



이번 <굳이 수집하는 것들>은 그녀가 이미 제목에서 인정했듯이, 이 척박한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들일 수도 있다. 어련히 존재하고 있는 것들. 굳이 수집해서 기억해두지 않으면, 우리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는 것들이다. 프로젝트는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동네 드로잉, 2. 안양 나무드로잉, 3. 기억점토, 4. 동네 필사본 시리즈, 5. 주차금지 시리즈이다.


전지작가는 드로잉의 제목이 - <단골을 만들고 싶었던 술집이 있었는데>, <나무 냄새가 나던 친구 집> - 이야기해주듯이 기억 속 안양의 장소를 드로잉 한다.(안양 드로잉) 안양천에 이름 모르지만, 그 자리에 늘 있는 나무들이 등장한다.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늘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나무에게 그녀는 ‘든든’, ‘활활’ 등의 이름을 붙여준다.(안양 나무 드로잉) 동네 곳곳에 붙은 방문(榜文)을 필사한 시리즈도 볼 수 있다.(동네 필사본 시리즈)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온갖 잡다한 것을 모두 가져다 붙인 외계종족이지만, 그것의 존재 이유인 ‘주차금지’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드로잉도 있다.(주차 금지 시리즈)


이번 프로젝트에서 아주 작은 싸이즈의 점토 오브제도 처음 등장한다. 손으로 조물조물 꼬깃꼬깃 정성스럽게 만든 조형물은 초등학교 미술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말랑말랑한 그 촉감과 함께 상기되는 손끝의 감정. 정확한 측량을 통한 구조물이 아니라, 손으로 감정을 더듬어 만들어 낸 오브제이다. 기억 점토 시리즈. 안양천의 두루미가 전시장을 날아다니고, 나무드로잉이 입체가 된다. 작가의 기억 속 안양이, 눈여겨보지 않으면 놓치고마는 자그만 사이즈의 입체물이 된다. 관객은 눈으로 만지듯 차근차근 볼 수밖에 없다.



(상) 공가공가해 Empty House Empty House! (안양2동 개발지구), 2017, 종이에 흑연 graphite on paper, 29.7×42cm

(하) 활활 Hwal Hwal (석수2동 LPG 보관소), 2017, 종이에 흑연 graphite on paper, 21×29.6cm

(우) 박석교 비둘기 Bagseog Bridge Pigeon, 2017, 지점토에 수채화 watercolor on paper clay, 21×12×18.5cm

<박석교 비둘기>는 이름 그대로 다리 밑에 비둘기가 앉아있는 점토 오브제인데, 그 작은 부분까지 어찌나 섬세한지…. 그 못생김에서 오는 순박함이었을까. 나는 비둘기를 아주 싫어하는 데도 점토 비둘기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고야 말았다. 나는 왜 별것도 아닌 비둘기를 보며 눈물이 났을까. 과거의 순수했던 어떤 때를 떠올렸던 것이 아닌가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본다. 우리 몸이 제일 처음 기억했던 것은 엄마일 것이다. 수만 번 엄마 얼굴을 보고, 수만 번 엄마 냄새를 맡아서 뇌리에 기억해 두었을 테다. 하지만 지금 ‘엄마한테 언제 전화했더라….’ 늘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 잘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금세 잊혀지는 것들, 어떤 공기 속에 부유했지만 잠깐 고개 숙였을 때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전지 작가는 무대 위로 초청한다. ‘네가 그렇게 버티고 있어서 나의 일상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전지 작가는 그 잊혀지는 짧은 틈새까지도 집요하게 포착하여, 현실에서 지워졌던 나의 기억과 나의 감각을 현실 세계로 불러온다.


여성 만화가로서 말 걸기


대부분의 일상툰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대중에게 공감을 끌어내 웃음을 유발하거나,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전지 작가 또한 때로는 웃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독자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문학적 재구성이거나 본래의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사실의 기록에서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것을 특별하지 않게 보여주기. 전지 작가가 여성 만화가로서 대중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태도라고 보인다. 대중적인 만화와 그녀의 만화가 예술적으로 구별되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일상이라는 것은 평범하게 늘 반복되는 ‘매일’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보통의 삶이 특별할 리 없다. 그녀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삶을, 그것도 만화로 기록한다. 그녀는 전통적인 회화처럼 단 한 장의 사건, 단 하나의 단어로 우리의 삶을 기록하려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주고받는 언어를 등장시키고, 그때의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신체의 여러 감각을 동원한다. <아저씨 입 냄새가 나는 거리>는 제목처럼 후각을 동원해야 공감이 가는 드로잉이다. <공가공가해>는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가듯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좌) 영원한 주차금지 No Parking Forever, 2017, 종이에 먹물 India ink on paper, 19×14cm

(우) 새벽 4시, 다 찍힘 It’s 4:00 a.m. And It’s All On The Camera, 2017, 종이에 흑연 graphite on paper, 19×24cm


이번 전시에는 안양 필사본 시리즈도 등장한다. 낙서 혹은 주인들이 삶을 꾸려나가며, 자연스럽게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는 방문 을 작가가 신체를 사용하여 필사한다. 이를테면 ‘여기 주차하면 할아버지 불편해요’, ‘관리비 완납하시고…’등 ‘알림’으로 시작해 ‘부탁드린다’로 끝나는 글이다. 정(正)자로 꼭꼭 눌러쓰기도 하고 혹은 신경질이 가득 묻어있는 휙휙 갈겨 써넣은 글귀이다. 어렸을 때는 마을 어귀 여기저기에서 흔히 보는 글귀였는데, 요즘 말로는 공지사항 정도가 아닐까 한다.


작가에게 굳이 왜 필사를 하느냐 물었더니, ‘써놓았던 이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함’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 안양에서 살았던 이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고 싶었다니! 나의 팔을 이용하여, 굳이 움직여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들의 마음! 그것이 날카로운 쓰레기 투여 금지이기도 했고, 진정으로 감사를 담은 ‘고맙읍니다’이기도 했다. 이 여성 작가가 서걱한 우리네 삶을 바라보고 공감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얼핏 보면 눈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보는 것 이전에 ‘들어주는’ 작업이 선행되었을 것으로 상상해본다. 어떤 장소의 역사를 그린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곳의 풍경과 이야기를 대상화하여 작업을 진행한 것이 아니다. 잊혀져 있던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긋이 바라보아야만. 그리고 그것에게 내 마음을 주고 내 신체를 이용하여 공감하여야만 발견할 수 있는 장면들을 기록해두었다. 무례하지 않고 섬세한 여성적 말 걸기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보인다.


작가는 기록한 일상을 특별하고 화려하게 채색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흑과 백으로만 드러낸다. 그녀가 사물을 구현해내는 방식은 ‘너는 화려해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해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섬세하고 얇은 것들이 쌓여간다. 흑연이 만들어 내는 굵직한 무게가 선이 아니라 면이다. 한 번에 만들어내는 확실함이 아니라, 여러 번 만져야만 나타나는 무게감이다. 작은 행위들이 쌓여서 강하게 만들어내는 일상 같은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무채색은 오히려 무채색이기에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처음엔 그녀의 만화가 투박한 흑연의 움직임, 친절하지 않은 말투, 평범한 것으로 보인다. 그 드로잉의 스토리까지 꼼꼼하게 읽어내고, 기억 점토의 찢어진 아스팔트의 작은 부분, 필사본의 글귀까지 함께 포착할 때 이 <굳이 수집하는 것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작가는 무심한 표정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안에 살갑게 관객을 기다리는 뽀얀 사연과 추억들이 있다. 나는 이 투박함이 작가의 의도된 투박함으로, 관객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할 때 민망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본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약간은 수줍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는 작업이 있다. 쭈뼛쭈뼛 주저하는 민망한 얼굴이지만, 할 이야기를 가득 품은 모습을 하고는 내게 말을 건다. 매우 열렬한 태도로. ‘이 나무는 안양천에서… 이 두루미는 안양에서…’ 전지 작가의 작업은 새어 나오는 말풍선을 찾아 읽는 묘미가 있다. 그녀의 안양 이야기를 들어야만 진정으로 이 프로젝트가 완결된다.




전지 작가 작품 전시 전경



마을을 기록하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할 터다. 때로는 사실적인 것보다 추억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 여성 만화가는 안양에서 살았던 개인적인 추억을 더듬어 가는 것으로 시작해, 우리의 기억에서, 도시에서 잊혀지는 것들을 포착하려 했다. 수집하고 보니, 그것들은 이 성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참 잊혀진 것들이었다. 그녀는 스스로 소중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무대 위로 올려 이름 불러주고, 손으로 어루만져 주고 있다. 작가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당신. 당신 또한 사랑받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굳이 수집하는 것들>은 꼬깃꼬깃하지만 정성스러운 작가의 담담한 연서이다. 이 기록은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 북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아직 서술되지 않은 빈 말풍선으로 남은 것들이 있다. 나는 전지 작가가 전시 중 관객과의 교감을 통해 아직은 빈칸인 말풍선에 유쾌한 생명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 이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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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생화화2017 이면탐구자

      기간/ 2017.12.15~2018.3.25

      장소/ 경기도미술관

      관람시간/ 10-18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 주최/ 경기문화재단

      주관/ 경기도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경기도

      협찬/ 삼화페인트, 산돌구름

  • ggc

    글쓴이/ 경기도미술관

    자기소개/ 경기도미술관은 경기도가 지원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도립미술관으로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작품의 수집, 동시대적이고 창의적인 기획전, 그리고 관람객과 경기도민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 g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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